마지막 학기가 되어서야 이렇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지금에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term3 까지는 정말이지 학교에 있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교 생활이 고되고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는 해외 대학교 캠퍼스의 낭만은 둘째치고, 그냥 내 자유 시간에 학교라는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싫었던 것 같다. 학교의 분위기, 공기, 냄새, 강의실, 낡은 책상과 의자 역시 나를 쾌 보다는 불쾌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집에 갈 생각만 했다. 일분 일초라도 불필요하게 여기 남아있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뛰어서라도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타고 집에가려 했고, 아침 8:30 수업은 정말 지옥같이 싫었다. 그렇게 term1, 2, 3를 보내왔었다. 뭔가 싫은 것을 참고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것 만큼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없으리라. 내가 왜 그렇게 그것들이 싫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 이유 조차 찾는 것을 거부한채 그저 막연하게 싫어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게 관성이 되어버렸고, 바로 지난 학기까지 흘러왔던 것이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취준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겸 "학교에서 뼈를 한번 묻어보자" 라는 심경으로 몇몇 뜻 있는 후배들을 모아서 아지트를 구축하여 터를 잡고 일자로는 6일차, 주차로는 2주차가 되었다. 사실 이번 시도도 작심삼일로 끝날것 같은 불안감이 없지않아 있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제목에도 밝혔지만, 그것은 바로 포기하면(or 내려놓으면)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사실, 내가 학교에 뼈를 묻기로 결심을 하면서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거나 비장한 각오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3가지를 포기하자고 다짐한 것 뿐이다.
첫번째는 "잠"을 포기했다. 집에서는 수다쟁이 와이프와 딸아이 덕분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제대로 공부하려면, 학교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쭉날쭉한 패턴은 유지되기가 매우 힘들다는 생각에 잠을 포기하고 수업이 있든, 없든, 몇시에 있든 무조건 6시에 일어나서 7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직행하는 패턴을 만들기로 했다. 즉, 밤에 몇시에 자건 6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위해서는 가끔 잠이 부족해도 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잠깐 20분 정도 엎드려서 쪽잠을 자는 것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된다는 판단도 깔려있기도 했다. 다음날 6시에 일어나야 하다보니 침대에 누워서 쓸데없는 짓을 안하게 되었고 늦어도 12시에는 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잠을 내려놓으니 아침 8시까지 학교에 도착하는 패턴이 만들어졌다.
두번째는 "집에 가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았다. 내가 학교에 있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고찰을 해보고, 또 원인을 why-why-why 기법을 사용해서 뿌리까지 찾아가다 보니,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또 황당하게도 듀얼 모니터 환경에 너무나도 적응을 해버려서 이것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에서 나오는 각종 lab, assignment 등을 싱글 모니터인 랩탑으로 하기가 너무 싫었던 것이라는 점이 도출되었다. 그에 곁들여서 아직까지도 랩탑 키보드로는 코딩을 하기가 많이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래서 같이 들고다니던 태블릿을 듀얼 모니터 대체로 연결하고, 또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물함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렇게 내가 환경을 셋팅하고 나니, "집에 가고 싶은 욕구"가 싹 사라진 것이었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원인으로 인해 지금껏 그 주변 것들이 싫어졌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집에 가고 싶은 욕구"를 제거하니 수업이 몇시에 끝나든 상관이 없어져 버렸다. 3:30에 끝나도 좋고, 5:30에 끝나도 좋다. 아니, 심지어 하루에 수업이 한시간 밖에 없어도 좋았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오히려 남는 시간과 짜투리 시간들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사용할 수있게 되었다.
세번째로는 "몸의 편안함"을 내려 놓았다. 사실 집에 있을 때는 와이프와 딸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아주 편하게 빤스에 런닝만 입고 공부했고, 공부하다가 조금만 찌뿌둥 하면 책상에 다리가 올라가고, 뒤로 기대다가 슬금슬금 침대 쪽으로 넘어가서 뒤척거리고 빈둥빈둥 대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그러한 패턴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물론 이런 환경 조차도 제대로 극복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긴 한데, 이런 환경이 생기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래도 나름 옷이라는 것을 제대로 걸치고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서, 또 혼자가 아니라 주변에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는 환경 하에서 하다보니 공부의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버리게 되었다. 여기는 학교라 누울 수 있는 공간도 없고(물론, 눈치 안보고 누워서 자는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또 빤스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안되기 때문에, 뭔가 나를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마치 누군가가 내 위에서 내 머리, 어깨, 손, 다리에 실을 매달고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흐트러진 나를 바로잡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집에 들어오면 대략 밤 10시30분 정도된다. 이미 와이프랑 딸아이는 취짐 준비 모드에 들어간 시간대이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내 몸은 엄청 피곤한데, 정신은 무언가로 꽉 채워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게 정말 내 표현력의 한계로 인해서 말로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데, 마치 내 정신체가 어딘가에서 내 몸을 리모콘을 조종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느낌이 불쾌한 것이 아니라 매우 충만으로 가득찬 쾌라는 것이다.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 라이프코드 들으면서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즐겁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요리는 와이프, 설거지는 내 몫이라..) 아마도 하루 종일 온전하게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왔기에,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면서 육체의 피로감과 스트레스 조차 압도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결국 이렇게 본질을 깊이 고찰하고, 그 고찰의 결과로 얻어진 통찰을 활용해서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또 포기할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한 결과로 정말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발견한 점은 쾌와 불쾌의 근본 원인을 끝까지 파헤치다보면 의외로 사소한 것, 혹은 관련이 적어보이는 것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찰을 해보지 않았으면 내가 어찌 듀얼모니터와 학교에 있기 싫은 것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라이프코드의 역대급 컨텐츠인 작심삼일의 악순환에 보면, 조남호 코치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 코드로 "지속, 강제, 방법" 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들을 현재의 나에게 대입해보면, 6시 기상(지속), 잠을 포기(강제) ,태블릿으로 듀얼모니터 설정(방법) 이렇게 했기에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작심삼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강제'라는 항목에 다소 부담감이 있다면, '포기' 혹은 '내려놓기' 정도로 생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래는 내가 이렇게 작심삼일을 극복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작성한 포스팅이니 같이 보면 뭔가 영감이 올 것이라 링크를 해둔다.
이제 지금껏 나를 힘들게 해왔던 작심삼일을 타파할 방법에 대해서 머리로 알았고, 몸으로 직접 체험을 해봤으니 다른 곳에도 충분히 응용하고 적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리고 작심삼일을 이겨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로 인해 내 삶이 정말 충만해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내가 가진 고찰족으로서의 포텐셜을 한껏 이끌어내 준 라이프코드(with 스터디코드)와 조남호 코치를 비롯한 연구원들에게 정말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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